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Hearts of Iron IV/카이저라이히/국가/아시아 (문단 편집) ==== {{{#B22222 [[중국 국민당|민감기의군]]}}}[* 민은 푸젠성 민허우, 감은 장시성 간저우, 기의군은 봉기군이란 뜻이다.] (CHI) ==== ||{{{+1 민감기의군 소개}}} 1927년 늦겨울, 중국 국민당의 [[국민혁명]]은 일련의 대규모 군사적 패배와 원정 지휘관 장제스의 사망 이후 좌절 직전에 있었습니다. 국민당의 [[국민혁명군]]이 파멸하자 리지선 장군은 직예군벌과 그들의 독일 추종자들에게 대항하는 장기간 항전을 하여 혁명을 지속하자고 국민혁명군 일부를 설득했습니다. 그는 이후에 쑹칭링과 덩옌다와 합류하였고, 1932년 상하이 봉기 실패 후 언젠가 있을 반격을 위해 [[장시-푸젠 소비에트 공화국|장시 남동부와 푸젠 북서부 외딴 산악 촌락과 삼림 지대]]로 도피하였습니다. 한편 좌익이 지배하는 국민당 중앙위원회는 언젠가 중국을 해방하기 위한 망명정부를 조직하여 유럽으로 도피하였습니다. 화남의 외딴 시골 오지인 이 곳에서, 쑹칭링의 대중주의 기반 정부는 지역의 조직 및 동맹한 마을과 관련있는 비밀에 쌓여있는 독특한 운동을 창조하였습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농민들은 구국이라는 사명을 완수할 젊은 혁명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를 바라는 국민혁명군 장교들에게 교육받고 훈련되었습니다. 그들은 국민당의 자유로운 중국에 계급이 없어야 한다고 배웁니다. 그들은 범죄 조직이 무기 밀반입과 공급 역할을 한다는 소문과 함꼐 상하이 중립지대에 있는 광대한 간첩, 정보원, 당 조직, 동료 좌익 네트워크에 추가로 도움받고 있습니다. 1932년 중국의 생디칼리스트, 사회주의자, 그리고 국민당원들은 중국 동해안 전역의 대규모 파업을 벌여 비열한 팔성연합의 무력화를 바랬습니다. 이는 잔인하게 진압되었지만, 중국인들에게 국민당이 다시 한번 귀환할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믿음을 주었습니다. ----- {{{+1 국민당의 다수파}}} 쑨원 선생의 혁명을 진정으로 계승한 이들로서 이들은 "단결"을 천명하기는 했지만, 좌파가 지배하고 있는 국민당은 점점 파벌주의적 정당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수년간의 거리감과 당원들 사이의 개인적 불신은, 당 내에 중요한 두 파벌이 형성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중앙위원회를 주도하는 파벌, [[개조파|개조동지회]][* 실제 역사에서 이들은 북벌 이후 국민당이 1924년 개조의 원칙을 저버리고 유력자(특히 장제스)의 관계로 당 중앙에 진출한 인사들을 비판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왕징웨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면서 국민당의 혁신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중원대전]]에서 패배하면서 해체되었으나 [[장왕합작]]이 복원되면서 어느 정도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들은 1930년대 중국 정치, 역사, 문학 등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왕징웨이 의장[* 카이저라이히 한국어 패치에서는 주석이라고 표기하지만 국민당 집단지도체제의 중심인 중앙위원회 수장 자격이라면 중앙위원회 의장이라고 표기해야 옳다.]과 함께 유럽으로 망명한 급진파 및 중도파 사회주의자들의 연정을 대표합니다. 원래는 유럽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의 공동체와 공사관 도시 내에 조직을 둔 비밀조직이었던 개조동지회는 국민당이 대전쟁 이후의 사회주의 혁명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던 1924년 당 "개조"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그런 만큼, 이들은 당이 정화, 및 개조되어야 하며 농민들과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새롭고 혁명적인 국민혁명군이 창설되어 국민당은 물론 다가오는 물질주의적 "계급투쟁"의 선봉을 맡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실제로도 개조동지회의 인사들은 적잖은 수가 공산당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적 경제학, 역사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았다.] 개조동지회는 이를 위해 혁명이 위에서 이끌어져야 하며, 교양 있고 애국적인 간부들이 혁명의 승리를 위해 대중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좌파가 지배하는 국민당의 둘째 가는 파벌은 쑹칭링과 함께 민감기의구로 도망간 이들의 파벌입니다. 이들은 중국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방법은 직접적인 행동을 최대한 빨리 집행하는 것이라 말하며 자신들을 임시행동위원회라 선언했습니다. [* 실제 역사에서 중국 국민당 임시행동위원회는 북벌 과정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이 모두 혁명을 배반했다고 주장하면서 대중혁명을 복원하는 제3의 길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덩옌다]]가 살해당하면서 와해되었지만 이후 [[국공내전]] 시기 반장세력을 결집시키는 민주당파의 시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임시행동위원회는 반대로 혁명이 아래에서 위로 진행되어야하며, 덩옌다 장군같은 "특출찬" 개인들은 대중이 혁명적 의식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고 믿습니다. 다만 이로 인해 임시행동위원회는 유럽에서 귀환한 이들과 대립하고 있습니다. ----- {{{+1 국민당의 소수파}}} 좌파가 주도하는 국민당 내의 두 주요 파벌을 제외하더라도, 진정한 정통 국민당이라는 좌파의 주장은 어쨌던 이들이 국민혁명이라는 공통된 대의 아래 여러 "소수" 파벌 조직들을 포함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유럽의 중국 망명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스러운 황포군관학교 장교들이 성장하는 유럽의 급진주의, 이를테면 사빈코프의 국민공화당, 프랑스주의 소렐주의 운동, 브리튼 연방의 오스왈드 모즐리의 최대주의 운동 등에 영감을 받아 작은 파벌을 이루고 있습니다. 유럽의 극좌 분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은 [[남의사|전체주의]]는, 제국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중국에 민주주의가 있을 곳은 없다고 믿는 급진적인 군대 장교들 사이에서 작지만 확실히 성장하고 있는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국민당은 북벌을 수행하기 위해 민주집중제 원칙을 포기하고 지방 군벌들과 사병, 유력자들에게 당원증을 남발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국민당은 실제로 당-국가 체제의 기반이 크게 흔들렸다. 이에 실망한 황포군관학교 출신 장교들은 국민당을 대체할 새로울 비밀결사를 내세웠는데 그것이 중화부흥사였다. 이들은 1932년부터 장제스에게 절대복종하면서 국민당에 적대시하는 이들을 제거하는 작업에 돌입하였다. 이들은 중일전쟁이 터지고 국민당 소조직을 제거하는 원칙에 따라 1938년 해산되었지만 실제로는 1945년까지 활동을 지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민당의 모두가 유럽이나 중국으로 도피한 것은 아니며, 상당한 수의 중도파, 그리고 비슷한 사상을 가진 "자유주의자"들은 동남아시아나 미국(특히 하와이)로 망명했습니다. 이 교무위원회[* 화교들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는 부서. 국민당의 불안정한 재정수입상 부유한 화교들의 지지를 얻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의 명목상 지도자는 국민당의 창업자의 아들인 쑨커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교무위원회는 바라트 코뮌에 보내져 정치 및 군사 훈련을 받고 있는 국민혁명군 장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 실제 역사에서 쑨커는 북벌 이후 국민당의 재조직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같은 재조파의 일원인 후한민이 처형당해 큰 영향력이 없는듯.] "통일전선" 정책의 일환으로, 또 제3인터내셔널 지원과 인정을 받는 대가로 국민당은 국민당에 소속되지 않은 중국 내의 다른 사회주의 집단들과 불가피한 협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서로 이질적인 노동조합, 정당, 조직들은 중국 공단주의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느슨하게 통일되어 있으며, 평의회주의자, 아나르코-생디칼리스트, 아나키스트 그리고 다른 사회주의자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가장 주도적인 조직은 [[중국 공산당|중국 공단당]]입니다. || * {{{#!folding 정부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7f0000 5%, transparent 5%)" 5% 중화부흥사}}}||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ff0000 10%, transparent 0%)" 10% 중국 공단주의자[* [[생디칼리슴]]을 중국식으로 표현한 '공단주의자'들의 세력. 급진파인 [[왕밍]]과 같은 마르크스주의자, [[천두슈]]와 같은 정통 생디칼리슴을 표방하는 공단당(생디칼리슴당), 중국 [[아나키스트]]들의 조직인 세계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실제로 누가 공단주의자내 세력을 잡냐에 따라서 생디칼리슴 정당의 이름과 지도자도 바뀐다. 다만 집권은 못하고 이후 [[쑹칭링]]과 [[천궁보]]의 루트에 다른 루트를 제공하는 정도이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e93a3a 45%, transparent 0%)" '''{{{#333,#fd0 45% 중앙위원회}}}'''}}}||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c21e56 35%, transparent 0%)" 35% 민감정부}}}||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ffaa00 5%, transparent 0%)" 5% 하와이파}}}||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ffd800 0%, transparent 0%)" 0% 당외}}}||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0000ff 0%, transparent 0%)" 0% 국민당 장로}}}||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6e6e6e 0%, transparent 0%)" 0% 상해파}}}||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2d2d2d 0%, transparent 0%)" 0% 황포 극단분자}}}||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left, #8e3900 0%, transparent 0%)" 0% 황포계 극단분자}}}|| }}} * {{{#!folding 국가 정신 * '''당의 정통성: {{{#indianred 나락}}}''' ||국민당은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이상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는 면에서는 갈 길이 멉니다. 중국의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많은 공상가들이 그들의 이상향을 실현시킬 약속을 가지고 왔다가 사라졌고, 소수만이 약속을 지켰습니다. 전장에서의 승리는 국민당의 불굴을 증명하고 그 기치 아래에서 중국을 통일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인민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먼저 자신들의 영원한 투쟁에 시달리는 대중을 구하여야 합니다. 대중이 국민정부를 정당하다고 보려면, 오만한 선언과 화려한 열병식 대신 장기간의 국가 건설과 신중한 정책 실현이 필요할 것입니다. 한편 대다수는 국민당을 군벌 독재자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거나 먼 생디칼리슴 강대국의 위험한 꼭두각시로 봅니다. || 정치력 획득 {{{#indianred '''-10%'''}}}, 안정도 {{{#indianred '''-25.00%'''}}}, 전쟁 지지도 {{{#indianred '''-30.00%'''}}}, 연구 속도 {{{#indianred '''-20.00%'''}}}, 매일 순응도 획득 {{{#indianred '''-0.02%'''}}} * '''국부군 반군''' ||중국 국민당의 국면혁명군은 북벌 실패 이후 거의 10년 동안 과거의 망령으로 전락하였습니다. 혁명을 위하여 여전히 싸울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푸젠의 구릉 지대로 도망쳐 지난 수년간 게릴라 반란에 관여하고 1932년에는 용감하지만 실패한 기의를 일으켰습니다. 팔성연합 내 정치적 안정의 붕괴로, 민감기의구의 국민혁명군 잔당은 자유로운 중국을 위한 쑨원의 비전을 실현하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시도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이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국민혁명군은 연합의 군대에 저항하는 비대칭전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 매일 정치력 획득 {{{#indianred '''-0.10'''}}}, 매일 육군 경험치 획득량 {{{#indianred '''-0.30'''}}}, 보급 소비량/훈련 시간 {{{#green '''-5.0%'''}}}, 핵심 영토에서 사단 공격/방어 {{{#green '''+5.0%'''}}}, 무기대여 요청 긴장도 제한 {{{#indianred '''+5.0%'''}}}, 계획 수립 속도/최대 계획 획득치 {{{#indianred '''-20.0%'''}}}, 사단 한계 {{{#green '''+12'''}}}, 동맹국 호출 및 참전 불가능 {{{#indianred '''예'''}}} }}} ---- 카이저라이히 세계관에서 국민당의 운명은 [[랴오중카이 암살 사건]]를 기점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랴오중카이는 실제 역사와 달리 부상을 입지만 살아남는다. 그 책임으로 국민당 우파의 중심인물인 후한민이 처형당하고 우파는 이에 앙심을 품는다. 이후 국민당은 북벌을 시작하지만 실제 역사와 달리 북벌의 진행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우선 약속된 프랑스의 지원이 독일의 개입으로 방해되고 여기서 더 나아가 [[난징 사건]]을 빌미로 독일은 광저우를 점령하고 쑨촨팡의 병력을 지원한다 여기서 장제스는 난징을 점령해 사태를 반전시키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장제스는 (아마도 후한민 처형의 영향을 받았을) 자신의 부하들에게 살해당한다. 이 시점에서 북벌은 실패하고 국민혁명군은 붕괴한다. [[왕징웨이]]를 필두로 [[랴오중카이]], [[저우언라이]] 등의 국민당 주요 인사들은 해안가가 완전히 봉쇄되기 전 가까스로 프랑스로 탈출하였고 [[리쭝런]], [[주페이더]] 등은 운남과 광서(양광) 지역으로 도망쳐 군벌화된다. 그 밖에도 [[다이지타오]], [[허잉친]]등 국민당 좌파와 대립하는 인사들도 로어상으로는 존재하나 게임 내에서는 구현되지 않았다. 이후 국민혁명군의 잔존세력은 실제 역사에서의 공산당처럼 권력의 공백지대인 장시성과 푸젠성의 변경지대에서 절망스러운 항쟁을 이어나간다. 팔성연합은 이들을 토벌하려고 시도하나 인게임상으로 핵심주가 박히지 않은 것을 보면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듯하다. 이에 대중들은 국민당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간주하나 1932년 상하이 봉기는 이러한 인식을 역전시켰다. 비록 봉기는 독일이 또 다시 개입하면서 실패로 돌아갔지만 대중들은 국민당이 여전히 살아있으며 언젠가 다시 한번 북벌을 재개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36년이 밝아오고 중국을 얽애던 독일이 검은 월요일로 비틀거리자 중앙위원회는 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지원병과 함께, 임시행동위원회는 해방구에 남아있는 모든 힘을 끌어모아, 중화부흥사는 공사관 도시의 네트워크를 통해 쑨원의 이상을 실현시킬 마지막 기회를 부여잡고 국민혁명을 재개한다. 게임이 시작하면 대부분의 당내 인사들이 프랑스 코뮌으로 망명하여 망명정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처음부터 제3인터내셔널에 가입해 있다. 다만 이는 망명정부 시스템을 쓰기 위해서이고 팔성연합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는 3인터에 가입할 수 없다. 5개 성의 주인이 되기 위한 화동대전이 시작하면 행정 공백이 된 장시성 장악, 전진 기지를 확보하기 위한 푸젠성 장악, 중앙위원회가 도착할 항구를 확보하는 샤먼 확보의 미션이 있는데 셋 다 어렵지 않게 깰 수 있다. 다만 샤먼 확보는 시간 제한이 촉박하므로 안되겠다 싶으면 처음부터 민병대 3개 사단으로 공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ai 특성상 서로 싸우기 바쁘고 모자르다 싶은 사단은 인터내셔널의 지원병들이 해결해주니 최대한 적의 영토를 확보한다는 마인드로 촉수를 넓혀주자. 푸젠, 장시 지역을 완전히 확보하고 추가로 병력을 징병하면 화동대전은 무난하게 국민당의 승리로 끝낼 수 있다. 안경, 남경, 산동[* 산동은 집권 루트에 따라서 늦게 참전하거나 아예 참전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장쭝창이 집권하는 것이 가장 좋다. 안되겠다싶으면 루트 설정을 해주자]을 다 보내버리고 국민혁명정부가 재건되는데 0.26부터는 곧바로 북벌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국민혁명군을 한번 재건한 뒤에야 남방 군벌들을 요격한 뒤, 북벌을 실시 할 수 있다. 또한 그 밖에도 화동대전의 피해를 재건하는 내정 루트가 있는데 함정 카드다. 이걸 일일히 찍다가는 아무것도 못한 채 연성주의자나 직예의 공격에 노출되고 만다. 실제 역사에서의 장제스같이 적이 재정비하기전에 하나씩 요격하는 전략을 통해 고립된 군벌들을 격파하는 것이 좋다. 여기서부터 개조동지회와 임시행동위원회의 갈등이 격화되는데 장관 선정, 내정 해결, 항복한 군벌 및 장성는 물론 최전선의 사령관까지도 영향을 주니까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좋다. 사천과 운남에 천중밍과 주페이더 같은 양반이 집권해 헛바람이 들어 헛짓거리를 할 것 같다면 북직예를 치기 전 진즉 그랬거나 혹은 북직예 합병 후 바로 밀 가능성이 커진다. 북직예를 항복시키고 나온 막대한 무기로 땡6보에 공병중대 신병들을 모아 참호를 미리 파두자. 만일 이들 모두 비동맹 성향이거나 둘이서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면 안심하고 봉천 마적놈들과 일본과의 전쟁에 전념하면 된다.[* 사천과 운남 둘 다 '''극악의 산악이 국경을 형성하고 있어''' 서로가 서로를 치기 곤란하다. 인력이 좀 더 많은 사천이 밀기엔 수월하나, 운남은 아예 주요 승점 지역이 '''그 극악의 산악에 위치하고 있어''' 사천도 쉽사리 밀지 못한다. 2차 북벌은 최대한 빠르게 진행되어야하는데 북벌 성공 이후의 포커스가 베이징을 점령해야만 개방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봉천군벌이 개입하기 이전에 단독으로 베이징을 점령하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어찌되었든 간에 목표를 달성하고 베이징을 얼마 지나지않아 봉천군벌이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침공해올텐데 어차피 중국의 주요 지방을 점령한 국민정부에게 있어서 별 의미는 없다. 적당히 방어선을 구축하다가 포위섬멸로 잘라먹고 곧바로 진군해주자. 이 때 봉천군벌이 자신들의 승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공영권에 가입하는데 이것은 강제로 설정되어있어 플레이어가 무슨 짓을 해도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봉천군벌을 점령한다는 것은 사실상 2차 중일전쟁을 시작한다는 의미다.특히 40년 전후로 일본이 봉천정부를 공격하거나 장쭤린을 암살해버려 양위팅이 올라가는 괴뢰국 루트를 타버리니 적당히 정리후 바로 봉천부터 밀어버리는게 정신건강에 좋다. 하지만 가능한다면 독일령 동아시아와 전쟁이 시작된 뒤까지 전쟁을 미루었다가 일본의 병력이 분산된뒤 전쟁을 시작하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낼 수 있다. 2차 중일전쟁까지 끝내고 선양외를 끝냈다면 이제 후안내를 준비할 시간이다. 개조동지회와 임시행동위원회간의 갈등은 극에 달하고 결국 임시행동위원회는 권위주의로 일관하는 왕징웨이 탄핵안을 제출한다. 여기서 플레이어가 후원하는 특정 파벌이 중화부흥사의 급진파 지지율보다 높은 우위를 장악했다면 왕징웨이가 유지되거나 쑹칭링이 후임으로 취임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왕징웨이가 중앙위원회의 임시 해산을 선언하고 임시행동위원회는 내전을 준비한다. 이에 대응하려던 왕징웨이는 암살당하고 국민당 내전이 발발한다. 여기서 선택지는 셋으로 갈리는데 왕징웨이의 유지를 잇는 개조파가 북방에서 지원군을 끌고 와 개조파의 우위를 유지하거나 푸젠으로 퇴각한 덩옌다의 군대가 주도권을 잡거나 혹은 개조파의 남진을 저지하고 급진주의 비밀결사인 중화부흥사가 재조파와 명목상의 합작을 이룬 뒤 난징을 점령할 수 있다. 비록 이후에도 컨텐츠는 있지만 사실상 게임은 여기서 끝나는 셈이다. 여러모로 현실 역사에서 이상적인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좌파의 면모를 섞어놓은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사족으로 0.26 패치 직전 국민당 좌파 리워크 담당 공인에 의하면 카이저라이히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되는 국가 중 하나라고. 또한 바닐라의 중화민국 코드인 CHI를 배정받은 국가로, 다른 국가와 다르게 난징 점령 시 이벤트로 자동으로 천도하며 핵심주가 박힌다. 여기에 장교단에서 육군군관학교의 정신을 선정할때 황포의 정신이라는 고유 특성도 가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